
어릴 적 12월 31일이 되면 부랴부랴 집을 청소하고 목욕을 했다. 그리고 당시 착한 어린이는 9시에 자야 한다는 맹목적 계도에도 불구하고 365일 중 12월 31일은 하루 만큼은 까만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워야 했다. 이유는 해가 바뀌는 찰라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그렇게 새해 맞이의 경건함은 일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쇠와 나무가 만들어내는 깊은 울림. '33번이 맞나?' 한 번 두 번 세기도 하고, '저 많은 사람들은 이 시간에 어떻게 집에 가지?'하는 걱정과 함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들지 않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앞날에 대한 다짐이 가슴 속에서부터 마구 마구 올라왔다.
그러나 이런 경건함이, 또한 반성과 후회, 각오와 다짐에 대한 울림들이 2009년부터 사라졌다. KBS의 왜곡된 타종행사 진행과 풍선조차 시위물품이라며 축제의 한마당에 찬 물을 끼얹는 현 정부의 그릇된 태도 때문이었다.
이에 2009년 1월 한 시청자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시청자들의 알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민원을 냈고, 여기에 방통위는 '동 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이 고의적으로 방송을 왜곡, 과장할 의도는 없었다고 판단되나, 비록 쇼.오락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동 프로그램처럼 시사성이 포함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향후 제작시 사실성과 객관성 등에 있어 보다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고 조치함'이라는 답변했다.
방통위의 말대로라면 타종 행사는 그 고유의 의미를 상실한 채, 편집이 난무하는 쇼.오락 프로그램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또한 사실성과 객관성에 있어서의 주의 권고는 그나마 다시 KBS가 타종행사를 맡게 될 경우에만 적용 가능하다.
그렇다면 2010년의 타종행사는 어떻게 방송 되었을까?
먼저, 오랫동안 타종행사를 주관해 오던 KBS가 아닌 서울시 소유의 교통방송인 tbs가 주관을 맡았다.
KBS는 우아한 음악회 중간에 보신각의 전면이 아닌 후면에서 생중계로 현장을 연결했을 뿐이다. 결국 KBS에는 방통위가 말한 주의 권고를 지킬 '향후 제작'에 대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둘째, 33번의 울림은 북 소리에 묻혔다.
사실 2009년과는 달리 2010년 타종행사 현장은 현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2009년에 당한 바(?) 있어서인지 종이 울리는 33번의 시간 동안 앞의 3번을 제외하고는 현란한 북소리로 종소리를 덮어버렸다. 따라서 주관 방송사가 오디오를 덧씌워가며 사실성에 충실할 필요 없이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히 대비했다.
셋째, 대한민국 5천만 명이 함께 하는 타종행사를 서울시의 관치행사로 전락시켰다.
한 나라의 대표방송국이 아닌 시 소유의 방송사가 주관사였던 것도 그렇거니와, 타종이 끝나자마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계 디자인 도시, 서울' 선포식을 그 자리에서 진행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오시장의 자리 굳히기 시도는 사고의 위험이 높은 광화문 광장에서의 보드 대회 개최에 이어 겨울철 철거민들을 내쫓는 잔임함까지 더해져 관치행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2010년 1월 1일 광화문과 종로 일대 타종행사를 함께 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7만 여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신각을 중심으로 도로의 절반은 경찰이 차지했고, 그나마 철통같은 경찰의 경호를 뚫고 보신각 정면에 자리한 시민의 숫자는 어림잡아 만여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어릴 적 막연하게나마 갖고 있던 송구영신에 대한 경건함은 2009년과 2010년을 지내면서 이렇게 변질되고 왜곡되었다.
덧붙여 한 마디>> 보신각 정면에 서 있던 경찰복장의 "POSS(public order security service)"의 정체는? 1) 행사장 경호원 2) 경찰 3) 경찰 고용 사설 경호원 4) force와 발음이 유사한 정체 불명의 집단
2008년 타종행사 민원에 대한 방통위의 답>>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359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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