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과 8월 18일의 연이은 충격  

 아침 8시. '노무현이 자살시도 했대'라는 한 통화의 전화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TV뉴스도 속보를 통해 위중한 상태라며 부엉이 바위와 봉하마을을 중심으로 긴급히 관련 소식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응급실로 옮겨진 상태이나 자살인지 타살인지 불확실하다는 속보가 계속됐다. 그렇게 그는 62살의 삶을 스스로 거두었다.

 점심상을 막 거둔 오후 2시. '김대중 한때 호흡 정지'라는 자막이 TV화면의 1/4을 채웠다. 다른 소식을 전하고 있던 앵커는 급작스레 "한때 호흡이 정지 되었으나, 심폐 소생술을 통해 정상으로 되돌아 왔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2부 순서에서 관련 소식을 보다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란 말로 뉴스 1부를 마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광고는 30초도 안돼 다시 한 번 커다란 자막으로 뒤덮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누군가는 2009년에만 큰 별 4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며, 2월 13일에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이미 대한민국은 큰 별 3개를 잃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네 번째 별은 누가될지 불길하다 못해 무섭다고까지 한다. 이 모습이 오늘 날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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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장과 국장, 그리고 시청광장 

 석 달 간격으로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시청광장에서 떠나보냈다. 비록 정부가 마련한 분향소와 시민들이 마련한 분향소로 나뉘어 고인의 넋이 떠돌았지만, 그래도 국민이 중심이 돼 치른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은 고인을 상징하는 노란물결로 시청광장이 가득 찼다. 하지만 국장으로 치뤄진 8월 23일은 소통을 거부하고 대중이 모이는 걸 두려워하는 정부의 치밀한 계획 속에 진행됐다.

 석달 만의 반복학습 덕인지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진해서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문객들의 편의를 도왔다. 시민들의 분향소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첫 날 시청광장에 설치되긴 했으나, 다음 날 바로 정부 분향소가 시청광장에 마련되면서 그 명분이 약해졌고 결국 저녁 8시 쯤 시민 분향소는 철수됐다.

 김 전 대통령 서거 3일 째, 염이 진행되면서 폭우를 쏟아내던 하늘은 오후들어 뜨거운 햇볕으로 바뀌었고 정부와 유가족들은 이때까지도 국민장과 국장 여부를 놓고 엇갈린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밤 10시 33분 경, 폭우를 견뎌낸 빈소 가림막이 뜯어지면서 시청광장은 일순간 서울시와 정부를 향한 강한 불만으로 혼돈이 일었다.

 서거 4일 째, 국장으로 결정됐으나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6일장으로 영결식이 23일 일요일 오후 2시로 확정됐고 정부는 대규모 국장이라며 여론을 몰고 갔다. 그리고 여의도 국회 빈소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조화가 이명박 대통령의 그것과 나란히 세워졌다. 

 영결식을 하루 앞 둔 22일 토요일. 영결식 당일 노제 진행을 놓고도 유가족과 민주당, 정부는 조금씩 다른 입장을 취했고, 결국 정부의 안인 고인의 자택과 시청광장을 거쳐 현충원에 이르는 운구행로가 결정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 빈소에서 분향을 하고 이희호 여사를 만나 위로하며 영결식 날 날씨가 좋다고 언급해서일까? 영결식은 맑고 고운 날씨 속에 진행됐다. 이미 몸의 반쪽을 석 달 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85세의 노인은 생전 인연 혹은 악연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국장으로 진행되는 만큼 모든 장례절차를 정부가 이끌어나갔다. 여기에 국민들은 끼여들 여지가 없었다. 내 손으로 내가 뽑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교체를 이룬 국민의 정부는 그렇게 국민 곁에서 멀어져갔다. 고은 시인의 쓰고 신형원씨가 곡을 붙인 추모곡조차 불려지지 못했고, 고인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행렬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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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10년과 되찾은 10년, 그리고 가슴에 묻은 10년 

 이명박 정부는 대선후보 시절부터 '잃어버린 10년'이라며 과거 정권을 부정. 48.7%라는 수치상의 득표율을 등에 엎고 독선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일방적인 정책들은 지난 정권의 전면 부인뿐 아니라, 자신을 지지해 준 국민들의 염원도 부인하는 독선 행보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7년 6월 성공회대 강연에서 "50년에 걸친 독재 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세계가 공인하는 민주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잃어버린 10년이냐"며 자신의 85년 평생을 받쳐 일군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되찾은 10년'이라고 맞받아쳤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2008년 11월 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이명박 정부를 향해 '독재'라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위기, 민생위기, 남북관계 위기 등 이른바 ‘3대 위기’에 처해있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에 대해 “친일파와 군사독재의 줄기를 이어오고 있다”면서 “우리 국민은 독재를 가만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10월 혁신벤처기업인 특강에서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관치경제시대에 잘 주물러진 관료들, 정경유착해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일 수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잃어버린 게 뭐지요? 있으면 신고하십시오. 찾아드리겠습니다."라며 당시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그러나 권양숙 여사와 이희호 여사,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제 '잃어버린 10년'이란 말도 또 '되찾은 10년'이란 말도 모두 무색해졌다. 단지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연이어 떠나보내면서 '가슴에 묻은 10년'이 되어버렸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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