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분, 한명숙
스물일곱 청년이었던 남편은 마흔 한 살의 중년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이토록 아름다운 분들이 계실까요. 박성준과 한명숙, 한명숙과 박성준, 두 분의 사랑은 너무나 애절했기에 가슴이 저며옵니다. 너무나 고난했기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갈기갈기 찟기운 시대의 아픔과 시련을 사랑으로 감싸안은 두 분은 참으로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지난 시간 두 분이 겪으셨던 고난의 여정을 저린 마음으로 살며시 열어 봅니다.
연애를 시작한지 4년 만에 우리는 평생을 함께하기로 했다. 꿀과 같은 신혼생활, 신혼의 단꿈은 무참히 깨어져 버리고 말았다. 1968년 7월, 남편이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어 말았던 것이다. 남편은 6개월의 짧은 신혼생활의 추억만을 남겨둔 채 내 곁을 떠났다.
13년 동안 서로의 이상과 사랑을 오롯이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옥중서신이었다. 시대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분노와 희망이 온전하게 실린 우리의 편지는 우리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남편의 편지를 먹고 사는 새댁은 점점 더 강하고 맹렬한 투사가 되어갔고 어느덧 민주화 운동 한 가운데에 있게 했다.
이화여대 사감으로 있던 중 학생 시위를 지원하다 쫓겨나 옮겨 간 크리스챤아카데미. 한국사회에 산재한 갈등과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창설된 그곳에서 많은 동지들을 만났다. 여성노동자, 여성 농민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받는 여성들. 하지만 독재정권의 마지막 발악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았고, 소위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으로 나와 여덟명의 동지들은 구속되고 말았다.
2심이 끝난 후 광주로 이송되었고, 차츰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렇게 간절하게 염원하던 이 땅의 민주화가 다가오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론적으로 순진한 착각이 되고 말았다. 80년 5월 20일 아침, 요란한 총성이 광주교도소에 울려 퍼졌다.
1981년 8월 15일, 나는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2년 6개월만의 석방이었다. 나를 고문하고 핍박했던 박정희 정권은 무너지고 없었지만, 독재정권이 무너진 그 자리엔 신군부가 더 교묘한 방법으로 국민들의 삶을 옭죄고 있었다. 석방의 기쁨과 싸움의 대상이 사라졌다는 허탈감보다 새롭게 싸워야 할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마음을 어둡게 했다.
극도로 쇠약해진 몸을 추스르고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시대적 부조리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과 아직 감옥에 남아 있는 남편에 대한 걱정때문이었다. 예전에 남편의 옥바라지가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던 나는 교도소 경험 후 생각이 바뀌었다. 정치적 이유로 옥살이를 10년이상 강제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인간적이었고, 나는 남편의 석방운동을 시작했다.
1981년 12월 24일 저녁, 단식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누워있을 때 중앙정보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이 25일 석방되니 교도소로 오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그가 돌아온다. 나의 키다리 아저씨, 나의 동지이자 내 사랑의 총합인 박성준, 내 남편이 돌아온다. 빨간 넥타이를 한 채 쑥스럽게 미소 짓던 첫 데이트 때의 남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 일인가! 13년 6개월만의 만남이다. 준을 맞으러 가족과 함께 집을 나섰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한걸음에 달려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단식 탓에 기력을 잃은 나는 미처 집을 나서기도 전에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던 남편이 석방되던 날, 나는 그를 맞으러 가지 못했다.
1981년 12월 25일 오후 2시, 남편은 13년의 기나긴 형기를 마감하고 성탄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스물일곱 청년의 모습으로 나를 떠났던 남편은, 이제 마흔 한 살의 중년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나 역시 어여쁜 새색시에서 중년을 바라보는 서른일곱의 아낙이 되어있었다. 바보들의 행진 제가 옛날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이광재 의원이 출판 기념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5월 봉하에서의 그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6월 2일 심판의 날. 제가 맨 앞에 서겠습니다." <한명숙-부드러운 열정 세상을 품다>(행복한 책 읽기 간) 출판기념회에서 사실상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대학 3학년 때, 이화여대와 서울대의 기독교 학생연합 단체에서 마르고 껑충한 박성준을 처음 만났다. 나는 그를 통해 시대의 아픔과 사회의 현실에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대학축제 때, 나는 박성준에게 파트너를 신청했다. 축제장으로 들어서는 깡마르고 좁은 그의 목에 매어진 빨간 넥타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나는 꽁꽁 묶인 채 밤새도록 구타를 당했다. 밤과 낮을 구별할 수 없었고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온 몸은 피멍이 들어 부어올랐고 피부는 스치기만 해도 면도날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셀 수 없을 만큼 정신을 잃었고 차라리 그 순간이 행복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빨갱이’임을 실토하라는 것.
저희 남편이 13년 반 동안 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저에게 했던 말이 “이 여자 바보 아니냐”는 말이었습니다. 혼인 신고도 안한 새댁의 몸으로 아이도 없이 13년 반을 일편단심으로 기다려 준 아내에 대한 감사 어린 탄식이었겠지요.
젊은 날 남편에게서 받은 바보 인증 때문이었는지 바보 대통령과 역사적인 한 시대를 함께하는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보 대통령과 정치적 역정을 함께 해 오고, 그의 바보정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이광재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누군들 그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겠습니까. 한없이 슬퍼하고 한없이 자책하면서, 제 어깨 위에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던 그를 붙들고 함께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눈물을 닦고 또 한사람의 바보가 되겠다고 다시 우리 앞에 서 있으니, 믿음직스럽고, 마음 든든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요즘 걱정이 참 많습니다.
개인 한명숙으로야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마는,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깊은 우려와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과 경찰이 정권의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멀쩡한 세종시를 가지고 평지풍파는 왜 일으킵니까?
국민들 살림살이 나아지게 하겠다던 약속은 이미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4대강은 돈 먹는 하마가 되어 서민생활을 옥죄고 있습니다.
무소불위의 국정운영은 국민을 더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바보들에게 할 일이 생겼습니다.
등록금, 과외비 걱정에 등골이 휘어지는 학부모를 위하여
취직 걱정에 졸업식이 우울한 청년들을 위하여
이른 아침, 잠에서 덜 깬 아이를 들쳐업고 놀이방으로 종종 걸음치는 엄마들을 대신하여
전세 값, 물가고에 불면의 날을 보내고 있을 가장들을 대신하여
바보들이 행진을 시작하려 합니다.
지난 2년의 경험은 더 이상 말로는 안 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살아남은 바보들의 행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이광재가 서 있습니다.
이광재가 앞장서는 바보들의 행진을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하여, 충청도에서, 서울에서, 경기에서 나아가 전국에서
바보들이 행진할 민주주의 올레길에서 우리 다 같이 만납시다.
2010년 2월 24일 한명숙 올림
한명숙 전 총리가 26일 열린 자신의 자서전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배우 문성근 씨의 사회로 열린 출판기념회는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이해찬 전 총리, 김원기, 임채정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민주당 정세균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이해동 목사, 한승헌 변호사 등 내외빈 및 4대 종단과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물론이고 영화감독 이창동, 김두관 전 장관 등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했다.
▲ 26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내외빈.지지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 ⓒ프레시안(김하영)
각계 인사의 축사와 공연이 1시간 30여 분 간 이어지다 마지막에 연단에 오른 한 전 총리는 "내가 좀 고되고 외로운데 많은 분들이 같이 하니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한 전 총리는 "두 분의 대통령을 떠나보내고 좌절과 비애에 젖어 한동안 헤어나지 못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쉬고 싶었다"며 "두 손에 쥔 시대적 사명이라는 바통을 젊은 후배에게 넘겨주고 트랙 밖으로 떠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나약한 생각이었다. 상상도 못한 시련이 나에게 꽂혔다"며 "역주행하는 민주주의의 흐름을 되돌릴 때까지 나에게는 절망할 권리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이 일이 나를 다시 거친 들판에 세웠고 피하지 않겠다. 최전선에 우뚝 서겠다"며 "6월 2일 심판의 날 내가 맨 앞에 서겠다. 6월 2일 승리의 날 여러분과 함께 중심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한 전 총리는 이날 "'쉬어야지'라는 안이한 상황에서 뒷통수를 맞은 것이 부끄럽다", "시련을 결단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아직까지 다 하지 못한 사명이 남아 있다. 아직까지 견뎌야 할 시련이 남아 있다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시련을 뚫고 나의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겠다" 등 '시련'이라는 단어를 부쩍 많이 얘기했다.
한 전 총리는 현재로서는 야권에서 가장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꼽히지만, 한 전 총리가 처한 상황은 녹록치만은 않다. 그가 출판기념회를 하는 순간에도 검찰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관련 자금 추적 결과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한 전 총리가 넘어야 할 '시련'이다.
한 전 총리의 혐의와 관계없이 여권에서 비리 혐의를 쟁점으로 부각시키면 'MB정권 중간 심판'이라는 야권의 선거 프레임이 '정치 보복에 대한 항거' 혹은 한 전 총리 개인의 문제로 협소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결심을 굳힌 만큼 야권 내부에서의 경쟁도 넘어서야 한다. 민주당 내에서는 김성순, 이계안 서울시장 후보들이, 민주당 밖에서는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등 일찌감치 서울시장을 위해 뛰고 있는 이른바 '준비된 시장 후보'들과도 경쟁을 벌여야 한다. 서울시장 출마를 저울질 중인 국민참여당 유시민 전 의원과도 협력과 경쟁 관계에 놓여있다.
출판기념회 축사에서 청화 스님은 한 전 총리에게 "스스로 차돌이 돼서 매를 맞으면 때리는 방망이가 부러지게 하라"고 격려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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